ⓒ 뉘서 님


  살짝 부담될 정도로 눈부신 조명
. 귀가 먹먹한 함성. 소란을 뚫고 선명히 들려오는 바닥과 농구화가 마찰해 만드는 날카로운 소리. 케이터는 턱을 괴고 저 아래 있는 코트에 시선을 던졌다. 마치 점처럼 보이는 선수들 사이에서 꽃잎처럼 날아다니는 분홍빛이 있었다. 세이츠가 시원하게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푸른 눈이 매섭게 골을 노리고 있었다. 흰 농구화가 바닥을 박찼다. 앞을 가로막은 선수들을 제치고, 마른 몸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텅 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울려온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일어서 팔을 쳐들고 환호했다. 수많은 손바닥과 환호의 장막 너머에서, 케이터는 세이츠가 제 쪽으로 슬쩍 키스를 날리는 것을 보았다. 코트에서 관중석까지 늘어선 수많은 장애물을 피해 둘은 잽싸게 눈빛을 교환했다. 기쁨과 충족감에 반드르르 빛나는 보석 같은 눈동자가 케이터에게 옛일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딱 맞는 각도를 잡으려 있는 대로 팔을 뻗고 있던 케이터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나 조금 꼴사나운 자세였을 텐데. 괜히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케이터를 부른 주인공은 분홍빛 머리를 한 소녀였다. 헐렁하게 자켓을 풀어헤치고,, 움직이기 편해 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두 손에는 제법 렌즈가 커다란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위로 시원하게 치켜 올라간 눈이 케이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케이터는 자신이 아직 우스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은근슬쩍 팔을 거두었다.

 

  “그럼 부탁해 볼까-. 근데 누구? 기숙사에서 본 것 같긴 한데.”

  “세이츠. 하츠라뷸 2학년이에요.”

 

  소녀는 짧게 대답하고 어서 포즈를 취해보라는 듯 사진기를 들어 올렸다. 케이터는 순간 그녀의 동작에 압도당했다. 카메라를 알맞게 들고, 렌즈를 조절하고, 주의 깊게 파인더를 들여다보는 움직임이 마치 잘 숙련된 검사가 매끄럽게 시연하는 검법과 닮아 보였다. 단순히 사진을 찍는 동작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절도 있게 느껴지는 까닭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안광이 흘긋 엿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멍하니 눈길을 빼앗긴 케이터에게 무뚝뚝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뒤로.”

  “?”

  “뒤로 두 걸음.”

 

  케이터는 그녀가 손짓하는 대로 홀린 듯 움직였다. 이쯤이면 돼? 세이츠는 말없이 버튼을 몇 번 조작하더니 다시 케이터에게 명령했다. 옆으로. 케이터는 다시 옆으로 이동했다. 가많이 카메라를 만지던 그녀의 미간이 순간 구겨졌다. 케이터는 순간 움찔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기백에 눌리는 느낌이었다.

 

  “좀 더 왼쪽으로 옮길까나-.”

  “자리를 옮기죠.”

 

  세이츠는 케이터를 쳐다보지 않은 채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겼다. 눈은 여전히 파인더에 고정되어 있었다. 케이터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슬금슬금 그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세이츠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하츠라뷸 정원 한구석이었다. 꽤 구석진 곳이었지만, 정원 곳곳에 물을 주는 게 일이었던 케이터에게는 익숙한 장소였다. 숨겨둔 비장의 장소라도 있을 줄 알았떠니. 케이터가 속으로 살짝 실망하건 말건 세이츠는 다시 진지하게 카메라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반걸음만. 몸을 조금 틀어 보세요. 고개는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폭풍처럼 쏟아지는 요구에 따라 한참을 어딘가 잘못된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자니 셔터 소리와 함께 구원 같은 말을 들렸다.

 

  “이제 됐어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케이터는 희미하게 미소를 띤 그녀와 마주쳤다. 만면에 충족감이 가득했다. 아직 사진기에 박혀 있는 푸른 눈은 아까보다 더, 케이터가 여지껏 본 모든 것보다 더 생기 가득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찍은 사진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태도에서는 마치 먹이를 포식한 고양이와 같은 포만감마저 엿보였다. 세이츠는 신중하게 사진을 비교하더니 한 장을 골라 케이터에게 보여주었다.

 

  “이거에요.”

 

  다른 사진은 보여주지조차 않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이 사진이 부정할 수 없는 마스터피스라는 듯 내놓았다. 물론 받아든 사진은 인생샷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

 

  “대단한데! 전문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 같아.”

  “고마워요.”

 

  칭찬하자 세이츠는 조금 으쓱해졌다. 케이터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희미하게 드러나 우쭐함이 살짝 귀엽다고 생각했다.

 

  “여기, 메일 주소 줄 테니까 사진 보내줘~.”

 

  케이터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세이츠는 능숙한 솜씨로 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었다.

 

  “땡큐-. 기왕이면 마지카메 아이디로 알려 줄래? 사진 진짜 마음에 들어서 말이지. 좀 더 보고 싶어.”

 

  그녀는 기꺼이 마지카메 아이디도 알려 주었다. 둘은 서로 마지카메를 맞팔하고, 메일 주소도 교환했다. 케이터는 매일 밤 세이츠의 마지카메를 체크했다. 그녀의 계정에는 늘 하나씩 사진이 올라왔다. 햇살이 잘 드는 학원 구석 풍경, 마치 만찬처럼 보이는 평범한 구내식당 음식 사진. 새삼스레 예쁘게 보이는 하츠라뷸 정원의 장미. 가끔은 환하게 웃고 있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 남몰래 인상을 찌푸릴 때도 있었다. 비몽사몽한 아침에, 수업 시간 중 책상 밑에서, 샤워하고 젖은 머리로 침대에 엎드려서 수많은 메시지가 오갔다.

 

  그 중 어느 순간 그녀를 좋아하게 된 걸까. 어쩌다 세이츠를 마주치면 가슴이 들뜨는 때가 있었다. 골치 아픈 일도 전부 잊어버리고 가볍게 세이츠 곁으로 달려가던 순간들. 귀찮다는 듯이 몸을 빼는 그녀에게 일부러 더 달라붙어서, 셋쨩의 사진이 좋은걸. 하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던 순간들이 느긋하게 생각 저변으로 흘러내려갔다.. 케이터는 추억의 물살에 손을 담근 채, 찬찬히 사랑했던 세이츠를 골라냈다.

 

 

 


 

 

 

  “셋쨩, 경기 수고했어! 오늘 경기도 멋진걸.”

 

  케이터는 자판기에서 뽑아온 이온 음료를 세이츠에게 내밀었다. 세이츠는 흰 수건으로 가볍게 얼굴과 머리에 맺힌 땀을 털었다. 세이츠가 양손으로 수건을 모아 뺨에 댄 채 케이터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셋쨩? 귀엽게. 너스레를 떨자 그녀가 푸스스 웃었다.

 

  “아뇨. 선배 경음부 공연도 기대하고 있다고요. 선배도 무대 위에서 나만큼이나 멋지니까요.”

 

  케이터는 그 순간 자신이 처음 좋아했던 세이츠를 잡아냈다. 무엇이든 너답게 해낸 뒤, 이럴 줄 알았다며 웃는 네가 좋아. 그리고 이렇게, 솔직하게 사람을 뒤흔드는 면도 좋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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