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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세케가 세케함 (관계성 그대로 보인다는 뜻,)
사실 이거 혼자 하도 읽어서 살짝 너덜너덜해짐
제일 좋아하는 꽁치김치찌개 공개
케이터는 상인 집안의 아들입니다. 상인이라고 해도 거대한 귀족가의 상단처럼 부유하진 않아서, 끊임없이 대륙 여기저기를 어릴 적부터 돌아다녀야 했어요. 납품 처였던 귀족가나 소국의 왕가가 멸망하면 또다시 새 납품 처를 찾아 떠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잦은 이사로 점점 친구들도 멀어지게 되었어요. 정들 만하면 떠나고, 그리고 또 새로운 동네 친구들을 사 귀고, 시간이 지나면 짐을 꾸려 떠나는 삶. 케이터는 이 모든 행위에 질려가던 참이었습니다. 어차피 헤어질 친구라면 얕게 사귀는 것이 나아. 케이터는 점점 자라며 친구 관계를 ‘적당히’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사를 갈 때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며 엉엉 울곤 했었는데 말이에요. 이러는 편이 케이터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고 편리하다고 생각해가던 참이에요.
그러던 중, 세이츠네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세이츠네 마을은 작은 강을 끼고 작게 발달한 마을입니다. 하지만 마을 전체가 공방에 가까운지라, 이곳에서 나는 질 좋은 수제 공예품들이 왕가며 귀족가로 직접 납품되고 있어요. 케이터네는 운송 수단을 도맡아 관리하며 납품 단계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케이터의 아버지는 케이터에게, 더 이상 이사 가지 않아도 될 정도라며 내심 케이터에게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그간 잦은 이사로 케이 터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는지, 가족으로써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케이터는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아요. 그저 웃으며 ‘새 친구들’을 사귀러 나가는, 늘 하던 일과의 반복. 이번에는 몇 달이나 머물까. 케이터는 벌써 이 마을을 떠날 생각부터 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처음 만나기도 전에 이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간 케이터가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온 일종의 자기 방어예요.
세이츠는 마을의 골목대장입니다. 단순히 조용한 세이츠를 얕보고 덤벼오는 아이들을 몇 번 쓰러뜨려 주었더니 어느새 골목대장이 되어 있었을 뿐이지만요. 마을 아이들 중에서 달리기도 가장 빠르고, 승부욕이 강해 어떤 게임을 해도 곧잘 이기곤 합니다. 무엇보다 풍경화를 잘 그려서 벌써부터 자작가나 남작가에 납품할 정도예요. 마치 그 공간을 똑 떼어 캔버스에 옮겨 둔 것 같다며,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칭찬이 벌써부터 마을에 자자합니다. 마을에 막 온 케이터도 그 소문을 접했을 정도로요.
둘은 적당히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합니다. 케이터는 그저,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만 친구를 사귀어 왔어요. 잦은 이사로 한때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더니, 부모님이 울며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누나들은 케이터더러 너무 신경 쓰지 말라 했지만, 커가며 집안 사정을 이해하게 된 케이터는 ‘부모님이 안심할 정도로만’ 친구를 사귀는데 도가 트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번 마을에서 케이터의 레이더망에 잡힌 사람은 바로 세이츠입니다.
햇살은 따뜻하고, 강물은 조용히 흘러가고, 이따금씩 새소리가 들려오는 어느 한가로운 봄날, 세이츠는 그날도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비싸다는 푸른 물감도 제법 떠 두곤 여유롭게 붓을 놀리고 있어요. 케이터가 그런 세이츠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하지만, 마을 아이들이 말립니다. 세이츠가 ‘일’을 할 때에는 말을 걸면 큰일 난다면서요. 어디의 귀족 나으리가 의뢰했다나, 어쨌다나요. 때문에 케이터는 세이츠가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케이터에게 있어서 조금 생소한 일이에요. 빠르고 얕게 친구를 사귀는데만 몰두한 나머지, ‘단지 친구가 되기 위해’ 타인을 기다리는 건 제법 오랜만이거든요. 늘 먼저 급하게 말을 걸고, 사교적인 말투로 살갑게 다가가고, 함께 수다를 떨고, 그러다가 또 헤어지고, 그런 반복적인 루틴에 처음으로 금이 가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얌전히 풀밭에 앉아, 뒤에서 아이들이 공놀이하는 소음을 들으며,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세이츠를 구경하는 것은 제법 재미있었다고 해요. 선선한 바람이 그 광경을 한껏 더해 줍니다. 만약 케이터가 그때 그림을 그릴 줄 알았었다면, 그 세이츠의 뒷모습을 그대로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고 훗날 회고합니다.
케이터는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기다려서야 겨우 세이츠에게 첫인사를 건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세이츠의 반응은 건조합니다. 그래? 반가워. 정도가 끝이네요. 너희 집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따발총처럼 물어오던 다른 아이들과는 다릅니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서일까요. 아니면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다정한 분위기 탓일까요. 혹여나 이런저런 질문을 해 온다면 ‘사교적으로’ 보이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답변들이 모두 물에 풀어지듯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케이터는 조금 얼빠진 표정으로 뺨을 긁적여요. 생각보다 공략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케이터의 분위기를 딱하게 여겼는지, 아니면 말이 통하는 또래가 케이터밖에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세이츠는 케이터에게 ‘할 일이 없다면 자신의 작업을 도와달라’고 말해요. 케이터는 흔쾌히 수락합니다. 꼬꼬마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피곤하고, 케이터 자신도 말이 손쉽게 통하는 또래가 편하니까요.
그다음 날부터, 케이터는 세이츠의 조수로 일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강가로, 어느 날은 산 위로, 캔버스며 이젤, 물감 통을 들고 낑낑대며 세이츠의 뒤를 따르게 되어요. 이렇게 힘들다는 말은 없었잖아-! 라며 불평해 보아도, 친구가 없어 멀뚱하니 서 있는 것보다야 낫지 않느냐고 반박해오는 세이츠입니다. 이어 내가 왜 친구가 없냐는 케이터의 불평 섞인 말을 뚝 잘 라요. 친구 없잖아. 한 마디로 말입니다. 케이터는 세이츠가 말하는 ‘친구’의 의미를 너무나도 뼈저리게 깨달아 버려서,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세이츠의 뒤를 따라요. 어쩐지 재수 없으면서도, 건조하지만 다정하게 케이터를 챙겨주는 그 일련의 행동들이 제법 마음에 들어서……. 하루하루 세이츠의 뒤를 따르는 것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세이츠의 뒤에서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세이츠의 뒷모습만을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세이츠의 옆에서 집중하는 세이츠의 눈동자를 관람하곤 해요. 수다스러운 케이터가 유일하게 조용해지는 순간,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나 바람소리를 귀에 담을 수 있는 그 시간들이 소중해져서……. 케이터는 이 마을이, 세이츠가 마음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따라다닌 지 한 달 즈음되었을까요. 케이터와 세이츠는 제법 친해졌어요. 연령대가 비슷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붙어 다닌 지 한 달 정도 되었다면 누구든 간에 친해지는 법입니다. 몇몇 짓궂은 어린아이들은 케이터와 세이츠가 사귄다며 놀리기 일쑤예요. 세이츠의 꿀밤을 맞고 이내 조용해졌지만요.
그 무렵부터 케이터는 세이츠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붓질부터, 이내 남은 물감 덩어리를 물에 조금 풀어 자투리 천 위에 제법 그럴듯한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옆에서 봐주기도 해요. 세이츠의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기다리는 케이터가 심심해 보였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케이터가 앞으로 또 이사를 가게 된다면 이 마 을만은 잊지 말아 달라는 세이츠의 당부 때문입니다. 세이츠는 이 마을을 사랑해요.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이 나라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을도, 마을에 속한 세이츠 자신에게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 비록 잠깐 머물다 가게 될지언정, 케이터도 이 마을의 풍경을 오래오래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세이츠는 케이터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게 되었어요. 케이터는 세이츠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붓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심 그림을 배우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을 딱 들킨 것 같아 귀가 빨개진 것도 모른 채로.
물감이 부족하면 근처의 꽃잎을 따 짓이겨 붓에 묻히기도 하고, 오래된 붓으로 선을 긋다 그만 망가뜨리기도 하며 케이터는 천천히 그림을 배워나갑니다. 그런 진중한 작업은 자신과 맞지 않다며 냅다 뒤로 벌렁 누워버린 날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세이츠는 시크하게 마음대로 하라는 말뿐, 조금만 더 해보라며 매달려오는 법이 없습니다. 세이츠로써는 정말 케이터가 무리할까 봐 적당히 해도 좋다는 의미로 건넨 말이지만, 케이터는 괜히 세이츠의 기백에 눌려 투덜대면서도 붓을 잡곤 했습니다. 아무리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 귀찮을지언정, 케이터가 그림을 완성하면 세이츠가 싱긋 웃어주기 때문이에요.
케이터는 그렇게 세이츠와 친한 친구가 되어요. 세이츠는 케이터가 진솔하게 풍경을 그려내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입니다. 또한 마을 안에서만 살았던 세이츠와 다르게 케이터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니까요. 케이터가 기억을 더듬어 그려낸 풍경을 보고, 그 광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마을 바깥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케이터와 세이츠는 약속을 해요. 이담에 케이터가 커서 작은 상단을 차리게 되면, 세이츠와 함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자고요. 여러 풍경을 보고, 그리고, 마음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세이츠의 이름을 새긴 화집을 내서, 돈을 벌고, 그리고 그 돈으로 더 좋은 붓과 물감을 사고……. 그렇게 이야기는 점점 먼 미래를 향해 흘러갑니다. 누군가의 만남 이후에는 이별만 있다고 생각했던 케이터에게는 상당히 신기한 일이에요. 당장 내일 이사를 갈지도 모르는데, 성인이 된 후의 일을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다니요. 그리고 그 상상 속 에는 세이츠가 늘 함께합니다. 어쩐지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세이츠가 있다면 정말로 실현될 것 같은 꿈들입니다.
그렇게 우정을 이어나가던 중, 늘 그랬듯 케이터는 또다시 이사를 가게 됩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오래 있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짐을 싸던 도중, 세이츠가 케이터를 찾아와요. 잘 가라느니, 그동안 즐거웠다느니 하는 뻔한 인사 대신 세이츠는 단 한 가지를 묻습니다. ‘언 제 다시 와?’ 그 말에 놀라 눈을 끔뻑대는 케이터에게 부연 설명을 시작해요. 나를 데리러 간 다고 했잖아. 여러 나라를 함께 가 준다고 했으니까……. 케이터는 침묵합니다. 차마 치기 어린 충동이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세이츠의 저 강물을 닮아 푸른 눈이 올곧게 자신을 바라봐오면, 그 수다스러운 입도 꾹 다물어지고 마니까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언젠가는 이 마을에 돌아와 함께 세상을 구경하러 가자고, 세이츠와 케이터는 결코 스쳐 지나가는 한 때의 인연이 아니라고 단언해요. 그렇게 케이터는 새로운 마을을 향해 떠나게 되었습니다. 세이츠가 선물해 준, 케이터를 그린 그림을 품에 꼭 안고서요.
이후 케이터는 여전히 가족을 따라 이사하게 됩니다. 그 간격이 몇 년 단위로 길어졌다고 한들, 상단의 일원인 이상 거처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케이터는 더 이상 이전처럼 이사 다니는 일을 지겹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그곳의 풍 경을 그려 소중히 보관해두는 습관이 생겼어요. 케이터에게는 돌아갈 곳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든 간에, 케이터는 세이츠에게로 돌아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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